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 (문단 편집) === 제 2의 전성기(2002~2010) === ||[[파일:external/lh4.googleusercontent.com/%25EA%25B9%2580%25EB%258C%2580%25EC%259A%25B0.jpg|width=250]]|| ||[[김대우(1984)|김대우]]|| 광주일고는 2002년 다시 고교무대 정상으로 돌아왔다. 당시 고교 무대 쌍벽을 이루던 투수[* 정작 김대우와 고우석 모두 프로에서 실패했다. 특히 고우석은 2003년에 1차지명으로 뽑혔으나, 2군에서만 있다가 은퇴했고, 김대우는 프로에서 투수로는 실패하고 타자가 되었는데, 2할 5푼도 못 치고 있다가 다시 투수로 전향했다.] [[김대우(1984)|김대우]]와 [[고우석(1984)|고우석]], [[오준형]], [[이대형]], 이들의 1년 후배 [[모창민]]이 모두 한 팀[* 2002년 당시 라인업은 투수/1루수 김대우(고우석), 2루수 윤드로, 3루수 모창민, 유격수 김주호, 외야수 이창석-이대형-서정] 이었던 점만으로도 그 강력함은 알 수 있을 것이었다. 비록 [[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|천안북일고]]와 고교 무대를 나누는 통에 우승은 두 번으로 만족[* 첫 번째 대회였던 대통령배와 두 번째 대회인 청룡기를 광주일고가 차지했고, 바로 다음 대회인 황금사자기-화랑대기-봉황대기를 천안북일고가 가져갔다.]해야 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광주일고의 전성기는 충분히 돌아왔다. ||[[파일:external/dimg.donga.com/6949643.1.jpg]]|| ||2005년 황금사자기 우승 || 그리고 그 전성기는 에이스 [[나승현]]과 주장이자 4번타자인 [[강정호]]를 축으로 2005년 황금사자기에서 우승하면서 꾸준히 이어졌다. 당시 뛴 선수들이 [[나승현]], '''[[강정호]]''', '''[[서건창]]''', --[[허경민]]--[* [[2005년]]에는 중학생이었다.], [[김성현(1987)|김성현]], [[김강]] ,[[조성원]]같은 선수들이 뛰었던 시절로 봉황대기 결승에서 [[배장호]]가 이끌던 [[유신고등학교 야구부|유신고]]에게 일격을 당해 우승을 놓친 것이 아쉬울 정도의 멤버였다. 이들이 대부분 졸업한 후에는 3학년 [[정찬헌]]과 2학년 [[장민재]]를 에이스로 삼아 2007년 대통령배 결승에서 [[서울고등학교 야구부|서울고등학교]]의 에이스 [[이형종]]의 눈물을 이끌어 내면서 서울고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에 성공했으며,[* [[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/2007년 결승전|이 경기]]가 마지막으로 [[동대문운동장]]에서 열린 고교야구였다. 이 경기가 열리던 날, 수업을 2교시까지만 하고는 바로 중단한 뒤 학교 전체가 교사진이 부른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서 응원, 새벽에 복귀. 다음날 늦게 등교까지 하며 단축수업을 했을 정도로 이 날의 경기는 당시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있어서 중요한 경기였다.] 2008년에는 정성철과 [[장민재]](당시 장민제)를 앞세운 투수진으로 황금사자기 우승에 성공했다. 2009년 심동섭과 유창식으로 봉황대기 준우승의 아쉬움(천안북일고의 김용주에 패배)은 2010년 고교최대투수 [[유창식]] 고교최대야수 [[허일]]과 함께 장충고를 꺾고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하면서 깨끗하게 아쉬움을 털어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